라벨이 energy security인 게시물 표시

이란 원유 수출 (해상봉쇄 해제, 티팟 정유소, 환적)

이미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를 해제한 지 한 달도 안 돼 이란이 최대 6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9조 원어치에 달하는 원유를 수출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말입니다. 휴전이 외교적 숨 고르기가 아니라 이란 입장에서는 사실상 현금 확보 창구로 기능했다는 걸, 이번 수치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해상봉쇄 해제 한 달, 7,000만 배럴의 의미 제가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숫자를 두 번 확인했습니다. 7,000만 배럴. 전쟁 이전 이란이 중국으로 보내던 한 달치 물량과 맞먹는 규모가 단 한 달 만에 풀렸습니다. 해상봉쇄(naval blockade)란 특정 국가의 해상 교통로를 군사적으로 차단해 원자재나 물자의 유입·유출을 막는 조치입니다. 미국이 이란에 적용했던 이 봉쇄가 걷히자마자, 이란은 사실상 "저장해 둔 물량을 한꺼번에 털어냈다"는 분석이 나올 만합니다. 수출 경로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란 유조선 약 20척이 말레이시아 동부 연안 인근 공해상에 집결했고, 거기서 다른 유조선으로 화물을 옮겨 싣는 선박 간 환적(STS, Ship-to-Ship Transfer)을 진행했습니다. STS 환적이란 항구에 입항하지 않고 해상에서 두 선박이 나란히 붙어 화물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원산지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데 자주 쓰입니다. 제재를 받는 국가의 원유가 제3국을 거쳐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전형적인 우회 경로입니다. 이 거래에서 최종 수요처로 지목된 것이 중국의 티팟(teapot) 정유소입니다. 티팟 정유소란 중국 내 독립계 소규모 정유업체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로, 중국 국영 정유사들이 기피하는 제재 대상 원유도 가격만 맞으면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도 이 티팟 정유소들을 이란산 원유 수입의 핵심 통로로 명시적으로 지목한 바 있습니다([출처: 미국 재무부](https://home.treasury.gov)). 이번 거래의 핵심 구조 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해상봉쇄 ...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우방국 할인, 에너지 수송로, 해상 통제권)

이미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것도 중국 같은 우방국에는 할인 혜택까지 주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저는 이 뉴스를 처음 봤을 때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에너지 수송로에 정치적 가격표가 붙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우방국 할인이라는 발상,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습니다 중국 주재 이란대사가 베이징 세계평화포럼에서 한 발언은 생각보다 훨씬 파급력이 큽니다. "중국은 분명한 우방국이므로 해협 통행에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공개 석상에서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선언이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호르무즈해협의 법적 지위입니다. 호르무즈해협은 국제법상 통과통항권(Transit Passage)이 적용되는 국제 수로입니다. 통과통항권이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모든 국가의 선박이 국제해협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특정 국가가 허가를 내주거나 통행료를 받을 수 있는 성격의 바닷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미국과 걸프 산유국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상황을 더 들여다보면서 불편했던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이 이미 해협 통과 과정에서 일정한 요금을 지불하는 데 조용히 동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점입니다. 법적으로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돈을 내고 있다면, 그건 이미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실제로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출처: 미국 에너지정보청(EIA)](https://www.eia.gov)). 이 바닷길이 막히거나 통제되기 시작하면 에너지 가격은 물론 글로벌 물류 전체에 충격이 옵니다. 제가 보기에 이란은 군사적 봉쇄 카드 대신 훨씬 영리한 방식을 꺼내든 셈입니다. 요금·허가·우방국 할인이라는 경제적 통제 장치를 천천히 구축하는 것입니다....

영국 에너지 요금 인상 (연료빈곤, 가격상한, 에너지 안보)

이미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여름에 냉방비 걱정을 하다가, 가을도 오기 전에 난방비 걱정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오다니요. 7월 1일부터 영국의 에너지 가격상한이 연간 £1,862 수준으로 올랐습니다. 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에 쓰는 가구가 1,350만 가구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고, 저는 이 숫자를 보면서 단순한 공공요금 조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연료빈곤, 숫자 뒤에 숨은 현실 연료빈곤(fuel poverty)이라는 표현이 이번 보도에서 계속 등장합니다. 여기서 연료빈곤이란 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비용에 지출해야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요금이 비싸다는 뜻이 아니라, 냉난방을 포기하거나 다른 생활비를 깎아내야 하는 구조적 취약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번 인상으로 연료빈곤 가구가 약 11.3만에서 13.5만 가구로 늘어난다는 수치는 End Fuel Poverty Coalition이 요크 대학교 연구를 바탕으로 계산한 것입니다([출처: End Fuel Poverty Coalition](https://www.endfuelpoverty.org.uk)). 더 눈에 띄는 부분은 소득의 20% 이상을 에너지에 쓰는 극빈 가구가 430만에서 550만 가구로 뛴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 수치를 보면서, 이게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외식, 의류, 여행 같은 선택 소비가 먼저 줄어들고, 그게 다시 서비스업과 내수 경기를 짓누르는 흐름은 어느 나라든 비슷합니다. "여름인데 왜 벌써 겨울 걱정이냐"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타이밍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여름철 냉방비와 미납된 에너지 부채를 갚느라 소비 여력이 바닥나면, 10월 난방철이 시작될 때 이미 체력이 소진된 상태입니다. Cornwall Insight는 10월 평균 에너지 요금이 £1,654 수준으로 소폭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하지만, 가스 사용량이 늘어나는 겨울철 체감 부담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번 인상에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