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어컨 시장 (냉방 솔루션, K가전, 이동식 에어컨)

 올여름 유럽에서 보내는 지인의 카톡이 왔습니다. "여기 40도가 넘는데 에어컨이 없어서 죽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유럽의 폭염은 단순한 더위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유럽의 에어컨 보급 문화가 빠르게 바뀌는 지금,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한 K가전이 이 시장에서 어떤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지 들여다봤습니다.

## 냉방 솔루션이 절실해진 유럽, 왜 설치가 이렇게 어렵나

유럽의 여름을 직접 경험해본 분이라면 공감할 겁니다. 현지 건물들은 두꺼운 석조 벽과 이중창으로 설계되어 원래는 여름에도 실내가 서늘하게 유지됐습니다. 그런데 폭염의 강도가 해마다 달라지면서 이 설계 논리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건물 구조만이 아닙니다. 유럽의 주택 상당수는 수백 년이 된 역사적 건축물이거나, 외관 변형이 법으로 제한된 보존 건축물입니다. 여기에 에어컨 실외기를 달려면 관청 허가부터 받아야 하고, 배관 공사 비용만 수천만 원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에어컨 한 대 달자고 집 수리 공사 수준의 비용을 써야 한다니,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러다 보니 유럽 소비자들의 눈길이 쏠리는 것은 냉매 배관과 실외기 없이 작동하는 이동식 에어컨, 그리고 창문 틈에 끼워 쓰는 창문형 에어컨입니다. LG전자가 유럽에 출시한 이동식 에어컨이 주목받는 것도 이 맥락입니다. 이동식 에어컨이란 실외기를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배기 호스 하나만 창문으로 빼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일체형 냉방기기를 말합니다. 공사가 사실상 필요 없으니 임대 세입자나 문화재 건물 거주자에게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파세코는 창문형 에어컨을 앞세워 올해 1분기 프랑스 수출을 처음 성사시켰고, 신일전자는 냉방 출구를 최대 9m까지 연장할 수 있는 이동형 산업용 에어컨으로 설치 제약이 심한 상업 공간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은 3구 기준 최대 5,150W의 냉방 출력을 갖추고 있어 넓은 작업 공간도 커버합니다. 유럽의 에어컨 시장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는지는 수치로 확인됩니다. 영국에서는 폭염 직후 선풍기 판매가 한 주 만에 약 3,000% 급등했고, 에어컨 판매도 330%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수요 급증은 일시적 현상이 아닙니다. 폭염이 반복될수록 "그냥 참자"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듭니다.

유럽 에어컨 시장의 핵심 수요를 이끄는 제품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동식 에어컨: 실외기 불필요, 임대 주택·문화재 건물에 최적

- 창문형 에어컨: 설치 간단, 공사 비용 거의 없음

- 콤팩트 시스템에어컨: 기존 공간 활용도를 높인 천장형 카세트 방식

## K가전의 유럽 공략법, 가격 말고 다른 무기가 있는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에어컨 판매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한 것은 분명 고무적입니다. 특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남유럽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졌고, LG전자는 남유럽 가정용 에어컨 매출이 약 20% 증가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메리어트 호텔에 공급한 사례는 제가 보기에 단순한 납품 실적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호텔은 '팔라초 풀레(Palazzo Fulle)'라는 역사적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곳인데, 냉난방 설비를 들이면서도 문화재 요소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내놓은 답이 높이 204mm의 콤팩트한 '무풍 4Way 천장형 카세트'였습니다. 천장형 카세트 에어컨이란 실내기가 천장에 매립되어 사방으로 바람을 고르게 내보내는 시스템 에어컨 방식입니다. 벽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아 실내 인테리어와 건물 외관 모두 손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함께 공급된 대형 실외기 'DVM S2+(R32)'는 실외기 1대로 최대 64대의 실내기를 연결할 수 있는 멀티형 시스템인데, 여기서 R32란 지구온난화지수(GWP)가 기존 냉매 R410A의 약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친환경 냉매를 뜻합니다. GWP(Global Warming Potential)란 이산화탄소를 기준으로 특정 물질이 지구 온난화에 기여하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지표입니다. 유럽연합(EU)이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에서 저GWP 냉매를 쓴다는 점은 규제 측면에서도, 소비자 설득 측면에서도 중요한 강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K가전이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중국의 메이디, 하이얼, 그리 같은 가전 업체들이 유럽 맞춤형 저가 제품으로 파고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효율 등급을 뜻하는 SEER(계절 에너지 효율비, Seasonal Energy Efficiency Ratio)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가격을 낮춘 중국 제품들이 가성비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SEER이란 1년 냉방 시즌 동안 에어컨이 소비한 전력 대비 생산한 냉방 에너지의 비율로, 유럽에서는 이 수치가 구매 결정의 핵심 기준 중 하나입니다([출처: 유럽연합 에너지 효율 정책](https://energy.ec.europa.eu/topics/energy-efficiency_en)).

제 경험상 이런 가격 경쟁에서 브랜드만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핵심은 "유럽 건물에 실제로 설치할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인 조건입니다. 까다로운 건축물 보존 규정과 임대 계약 조건을 뚫고 소비자 선택을 받으려면, 설치 과정 자체를 단순화하는 기술이 제품 경쟁력의 핵심이 됩니다. 유럽의 냉방 시장은 "얼마나 강하게 시원한가"보다 "얼마나 쉽게 설치하고, 얼마나 조용하고, 얼마나 적은 전기를 쓰는가"로 이미 기준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유럽 집행위원회가 2030년까지 건물 에너지 소비를 대폭 줄이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만큼, 고효율·친환경 냉방 솔루션에 대한 수요는 규제와 함께 더 강해질 것입니다([출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https://commission.europa.eu/energy-climate-change-environment_en)). 정리하면, 지금 유럽 에어컨 시장은 K가전에게 분명한 기회이지만, 그 기회는 "더 많이 파는 것"보다 "유럽의 현실에 맞게 파는 것"에서 열립니다. 삼성전자의 문화재 호텔 납품 사례는 그 방향을 제대로 짚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냉방 문화는 지금 전환점에 서 있습니다. 에어컨을 낭비나 사치로 보던 시각이 흔들리고, 고령층과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필수 설비로 인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일시적이지 않다는 점은 폭염이 매년 반복되는 기후 데이터가 말해줍니다. K가전이 이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설치 간편성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잡는 현지 맞춤형 제품 개발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유럽 소비자가 진짜 원하는 건 강한 냉방 파워가 아니라 자신의 오래된 집에 조용히 녹아드는 냉방 솔루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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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news.nate.com/view/20260705n08844?mid=n0300